이제 당신의 사랑은 아무 의미도 없어

GoodNovel 완결

출산한 지 사흘 만에 아이를 잃고 난 뒤, 나는 줄리안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모든 습관을 버렸다. 나는 줄리안이 어디에 갔는지 묻지 않게 되었다. 그가 밤새도록 밖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평온하게 잠들 수 있었다.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다 유탄에 손목을 스쳐 의사가 비상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저는 가족이 없어요.” 한 간호사가 나를 알아보았다. “마르케티 부인 맞으시죠? 줄리안 씨의 차량 행렬이 아래에 주차되어 있어요. 가서 알려드릴까요?” 나는 시선을 내리고 그녀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30분 후, 줄리안이 결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값비싼 정장을 차려입은 채 낮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쳤잖아. 왜 나한테 전화하지 않았지?” 나는 손목에 감긴 붕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스친 것뿐이야. 보스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내 무심한 말투가 오히려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듯했다. 그가 입을 열어 말을 꺼내려던 순간, 복도에서 그의 부하들이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미아 얘기 들었어? 보스께서 정말 걔한테 푹 빠지신 모양이야. 카지노에서 발목을 삐었는데, 방탄 SUV 세 대를 보내서 길을 싹 비우게 하더라고. 직접 안아서 데리고 나왔다더라. 발이 땅에 닿지도 않게 말이야.” 줄리안의 턱이 굳어졌다. 그는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내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예전처럼 발끈해서 따져 묻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조용히 있었다. 침대에 기대어 앉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드디어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줄리안은 내가 조용히, 영원히 그의 삶에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챕터 (1)

第1章

출산한 지 사흘 만에 아이를 잃고 난 뒤, 나는 줄리안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모든 습관을 버렸다. 나는 줄리안이 어디에 갔는지 묻지 않게 되었다. 그가 밤새도록 밖에 있어도 나는 여전히 평온하게 잠들 수 있었다. 거리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다 유탄에 손목을 스쳐 의사가 비상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도 나는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저는 가족이 없어요.” 한 간호사가 나를 알아보았다. “마르케티 부인 맞으시죠? 줄리안 씨의 차량 행렬이 아래에 주차되어 있어요. 가서 알려드릴까요?” 나는 시선을 내리고 그녀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30분 후, 줄리안이 결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값비싼 정장을 차려입은 채 낮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쳤잖아. 왜 나한테 전화하지 않았지?” 나는 손목에 감긴 붕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스친 것뿐이야. 보스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내 무심한 말투가 오히려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듯했다. 그가 입을 열어 말을 꺼내려던 순간, 복도에서 그의 부하들이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미아 얘기 들었어? 보스께서 정말 걔한테 푹 빠지신 모양이야. 카지노에서 발목을 삐었는데, 방탄 SUV 세 대를 보내서 길을 싹 비우게 하더라고. 직접 안아서 데리고 나왔다더라. 발이 땅에 닿지도 않게 말이야.” 줄리안의 턱이 굳어졌다. 그는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내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예전처럼 발끈해서 따져 묻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조용히 있었다. 침대에 기대어 앉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드디어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줄리안은 내가 조용히, 영원히 그의 삶에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1장 우리가 그의 차에 올라타고 나서야 그는 낮은 목소리로 해명했다. “그 자식들이 지껄이는 말은 듣지 마. 미아는 내 클럽에서 춤추는 애야. 곤란한 일이 생겨서 보스인 내가 처리해 준 것뿐이야. 그냥 업무적인 일이야.” 내가 그저 짧게 콧소리로 대답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없이 차창에 기대자, 줄리안의 성질이 갑자기 폭발했다. “내 말을 못 믿겠어? 왜 아직도 나한테 냉랭하게 구는 거야?” “세라피나… 지난 6개월 동안 난 매일 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집에 들어왔어. 대체 나한테 뭘 더 바라는 거야?” 나는 차창 너머로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믿어.” “그저 이번 부상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고, 당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저택으로 돌아가자.” 완벽한 대답이었지만, 영혼이라고는 전혀 없는 미리 녹음해 둔 메시지 같은 말이었다. 줄리안이 운전대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요란한 경적 소리가 밤공기를 찢으며 울려 퍼졌고, 맞은편 클럽 뒷문에서 막 나온 댄서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중 한 명이 고개를 들고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차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미아… 쟤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줄리안은 본능적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나라면 이 여자와 마주칠 때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성을 잃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저 잠깐 힐끗 바라본 뒤, 마치 허공이라도 쳐다본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줄리안의 손가락이 운전대 위에서 굳었지만, 그의 시선은 그녀에게로 향했다. 매서운 한밤중의 바람 속에서 그 여자는 화려하게 반짝이는 값싼 슬립 드레스만 걸친 채였다. 그녀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꽉 감싸 안고 있었고, 추위에 코끝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손은 이미 문손잡이 위에 올라가 있었다. 눈에 드러난 걱정은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내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빠져나가기 쉽도록 차 문을 열고 나왔다. “다른 구역에서 볼일이 있으면, 난 택시 타고 혼자 돌아갈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문을 세게 닫고 횡단보도를 향해 곧장 걸어갔고, 줄리안이 내 뒤를 쫓아와 손목을 붙잡았다. “저 여자랑은 진작에 끝났어. 밖이 이렇게 추운데 거기 나와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고. 제발 모든 걸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나는 그를 바라보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 젊은 여자가 이런 곳에서 살아남는 건 쉽지 않잖아. 설령 당신 밑에서 일하는 사람일 뿐이라 해도, 당신이 챙겨주는 게 당연하지. 난 괜찮아.” 줄리안은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원망의 흔적은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전의 나는 내 목숨 그 자체를 그의 삶에 묶어 놓았었다. 그의 양복 소매에서 곱슬머리카락 한 올만 발견해도 날이 밝을 때까지 그를 추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나는 마침내 그가 원했던 바로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용하고, 품위 있고, 완전히 이성적인 사람. 그런데도 그의 가슴은 꽉 조여 왔다. 마치 젖은 스펀지가 가슴속을 가득 채운 것처럼 숨이 막혔다. 나는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고 돌아서서 걸어갔고, 길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차 옆에서 줄리안은 이미 재킷을 벗어 미아의 어깨에 걸쳐 주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여 깊게 입을 맞추었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사실, 이미 예상했어야 했다. 처음 그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했을 때처럼 행동할 생각은 절대 없었다. 미친 여자처럼 달려가 소리 지르며 말할 생각도 없었다. “줄리안 마르케티! 양심도 없어? 난 17살 때부터 당신과 함께했어. 자동차 정비소에서 잠을 자던 때부터 저택에서 살게 된 지금까지 함께했다고!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생겼다고?” 그때 그는 내가 터뜨린 코피를 닦으며 비웃었다. “양심? 네게 양심이 있었다면 17살에 내 침대에 기어들어 왔겠어? 네 친부모조차 널 원하지 않았잖아. 고아원에서 널 데리고 나와 10년이 넘도록 먹여 살린 사람이 바로 나야. 오히려 무릎 꿇고 내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말들은 칼날처럼 우리가 거리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해 보냈던 10년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그 자리에는 피와 쓰라림만 남았다. 휴대전화가 진동하며 나를 과거의 기억에서 끌어냈다. “세라피나 아가씨, 부모님께서 남겨 주신 비공개 신탁 기금과 소유권 서류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산 셀라노 저택을 방문해 명의 이전 절차를 마무리하시는 건 언제쯤이 편하시겠습니까?” 나는 소매를 잡아당겨 손목에 남은 희미한 흉터를 가렸다. “열흘 뒤요. 제 이혼 절차도 열흘 뒤면 마무리될 거예요.”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잠시 말을 멈췄다. “지난 세월 동안 줄리안 님과 함께하시느라 정말 힘드셨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는다고 해서 포스헤이븐과의 모든 인연까지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지하 클럽의 밝은 간판들을 바라보며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을 향한 제 사랑은 이제 끝났어요. 그냥 이 도시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2장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묵직한 참나무 문을 밀어 열었고, 벽난로 위에 걸린 결혼사진과 마주쳤다. 사진 속 남자는 무모할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의 코끝은 내 관자놀이에 닿아 있었다. 우리 사랑이 절정에 달했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줄리안과 나는 둘 다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었다. 내가 17살이었을 때, 원장은 빚을 갚기 위해 나를 잔인한 늙은 마피아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그때 줄리안이 내 손을 잡아 높은 벽돌담 너머로 나를 끌어당겼고, 내가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항구의 선착장까지 줄곧 달렸다. 원장은 우리의 등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줄리안 마르케티! 네가 그렇게 대단하다면, 평생 그 아이를 지킬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그는 뒤돌아섰고, 그의 눈에는 무모할 만큼 단호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렇다면 제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그는 지하 결투로 겨우 번 돈으로 지하실 아파트를 빌린 뒤, 조직을 위해 거리에서 보호비를 걷기 시작했다. “내가 정식 조직원이 되면, 널 여기서 벗어나게 해줄게. 그때가 오면 아무도 감히 널 건드리지 못할 거야.” 거리 생활을 시작한 첫 3년 동안, 그는 세력권을 두고 싸우다가 거의 죽을 뻔했다. 총을 꺼내 총격전에 뛰어들 때마다 그는 가죽 재킷의 가슴 주머니에 내 사진을 조심스럽게 넣어두곤 했다. 나는 조직이 소유한 세탁소에서 장부를 정리하며 한 푼도 빠짐없이 돈을 모았다. 가장 힘들었던 크리스마스에는 주머니를 탈탈 털어도 동전 몇 개조차 모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연휴를 버티기 위해 차가운 피자 한 조각을 나눠 먹어야 했다. 이후 그는 순전히 무자비함만으로 한 단계씩 조직 내에서의 지위를 올려갔고, 나는 그를 위해 전략을 짜고 물류를 관리하며 배후에서 살림을 꾸려 나갔다. 우리는 곰팡내 나는 지하실에서 호화로운 펜트하우스로 옮겼고, 마침내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언덕 위의 저택에 들어갔다. 줄리안의 권력망이 커질수록, 그의 주변을 맴도는 ‘파트너들’은 점점 더 화려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의 셔츠 깃 안쪽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발견했다. 내가 절대로 바르지 않을, 선명하고 강렬한 색이었다. “카지노에 새로 온 댄서가 넘어졌어. 일으켜 세워주다가 묻은 거야!” 그는 짜증스럽게 나비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세라피나, 자기도 세상 물정 알잖아. 꼭 무슨 의처증 걸린 의부증 아줌마처럼 굴어야겠어?” “내 신뢰가 당신의 정절을 보장해 줘? 줄리안, 우리는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했잖아. 단 하루도 모자람 없이!” 그날부터 우리는 끝없는 말다툼과 냉전의 반복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그의 통화 기록과 일정을 뒤졌다. 그가 부두를 점검하러 간다고 했던 밤에도 몰래 차를 몰고 나가 창고 밖에서 기다리곤 했다. 한계까지 몰린 줄리안은 결국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여자들을 하나둘씩 갈아치웠다. 최악의 순간에는 일부러 셔츠 단추를 풀어 둔 채, 내 눈앞에 등에 남은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도록 했다. “뒷조사는 끝났어?” 그가 비웃듯 말했다. “증거를 원했잖아? 자, 여기 있어.” 나는 통제력을 잃은 미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성적인 내 머리는 그만 놓아주라고 소리쳤지만,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1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줄리안과 나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뼛속까지 얽혀 있었다. 서로를 떼어내는 것은 고통스러울 테지만, 함께 남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파괴하게 될 터였다. 1년 전, 그는 갑자기 ‘정착’했다. 다른 여자들을 모두 정리하고, '미아'라는 카지노 댄서 한 명만 곁에 두었다. 나는 누군가를 시켜 그녀의 신원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본 순간, 나는 거의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그 얼굴은 내가 아직 그와의 영원을 믿었던 17살의 내 모습과 판박이였다. 그때 나는 임신 8개월이었고 출산 예정일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저택이 습격당했을 때, 나는 그가 단지 미아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뛰어난 부하들을 재배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충격으로 조산이 시작되었다. 우리 아기는 너무나 허약한 상태로 태어났고, 고통스러운 3일 동안 인큐베이터 안에서 힘겹게 버티다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줄리안은 진짜 나를 다시 바라보느니 차라리 값싼 모조품을 사랑하는 쪽을 택한 것이었다. 장례식 다음 날 밤, 나는 절망에 빠져 수면제 한 병을 통째로 삼켰다. 줄리안이 침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왔을 때, 그의 몸은 떨림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나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그의 눈은 무서울 정도로 충혈되어 있었다. “세라피나! 죽고 싶어서 그래? 우리 다시 시작하자. 맹세할게. 이제부터는 너 하나뿐이야. 그 여자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게!” 들것에 누워 있던 나는 그저 텅 빈 기분이었다. 울 힘조차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바로 그날, 산 셀라노의 늙은 고문인 비토리오가 비밀 편지와 누렇게 바랜 서류철을 사람을 통해 전해왔다. [세라피나, 위원회에서 20년 전 5대 가문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 기록을 재조사했단다. 이 서류에 있는 두 분이 네 친부모야.] 나는 서류철을 움켜쥐었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내 아버지 엘리아스 비탈레가 한때 이 암흑가에서 가장 존경받던 고문이었으며, 혼자 힘으로 20년간의 휴전을 협상해 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비밀 편지를 태운 뒤 유령처럼 창가로 걸어갔다. 정원 아래에서는 줄리안이 미아를 품에 안고 있었다. “미안해, 미아. 그 사람은 방금 우리 아이를 잃어서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야. 지금 당장 떠날 순 없어."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세라피나가 안정을 되찾으면, 너한테 제대로 보상하겠다고 약속할게.” 두 사람은 헤어지기 싫어하는 연인들처럼 뜨겁게 키스를 나누었다. 마치 운명에 가로막힌 비극적인 연인 한 쌍 같았다. 그 순간, 가슴 속 무언가가 찢어지듯 활짝 벌어졌고, 너무나 날카로운 고통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병원 침대에서 보낸 7번째 날, 차가울 만큼 명료한 깨달음이 나를 덮쳤다. 나는 줄리안을 떠날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이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어버릴 것이다. 3장 7일 내내 줄리안은 저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 역시 그의 행방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기계적으로 해나가며 이혼 서류를 변호사에게 넘기고, 내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이혼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려면, 우리가 몇 년 전 사우스사이드의 작은 예배당에서 작성했던 혼인증명서 원본을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 서류는 우리가 예전에 살던 낡은 아파트에 보관되어 있었고, 그곳은 수년째 비어 있었다. 나는 직접 가서 가져오기로 했고, 가는 김에 아파트를 매각하는 일까지 처리하기로 했다. 나는 건물 관리인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지만,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쪽에서 여자의 억눌린 신음과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미아의 값싼 레이스 드레스가 먼지 쌓인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는 것이 보였다. 줄리안은 그녀를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밀어붙이고 있었고, 정장 바지는 무릎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몸을 거칠게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의 허리를 움켜쥔 그의 약지에는 아직도 우리의 결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뒤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리고 건물 관리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은 좋은 때가 아닌 것 같군요. 다른 날 다시 오죠.” 관리인은 젊은 여자였고, 안에서 나는 소리를 분명히 들은 듯했다.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르케티 부인… 제가 이 일을 기록으로 남겨드릴까요?” 나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개인적인 일이에요. 개입하지 말아 주세요.” 그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고 뭐가 달라질까? 천박한 악처처럼 크게 난리를 피울까, 아니면 절망에 빠진 원망스러운 아내처럼 우리가 거리에서 함께 견뎌냈던 힘겨운 날들을 떠올리며 울부짖을까? 이제는 어느 쪽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남자의 마음이 떠나버렸다면, 그를 붙잡으려 애써 봐야 텅 빈 껍데기만 남을 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지만, 뒤쫓아온 줄리안에게 붙잡혔다. 그는 여전히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셔츠 깃은 풀어헤쳐져 있었고, 쇄골에는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왜 여기 있어? 방금… 전부 본 거야?” 나는 그의 손을 떼어내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예전 물건 몇 개 가지러 들렀던 길이야. 열쇠를 안 가져왔다는 걸 깨닫고 나가려던 참이었어.” 그는 내가 그 이상의 상황을 차마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 단정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주는 부두 쪽 감시가 워낙 삼엄해서 겨우 빠져나온 거야. 미아가 동네에 라이벌 조직들이 깔렸다고 해서 숨겨주려고 여기로 데려온 것뿐이니까… 쓸데없는 오해는 하지 마.” 나는 그런 구질구질한 거짓말을 지적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저 몸을 돌려 계속 걸어갈 뿐이었다. 바로 그때, 아파트 안에서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창틀 사이로 새빨간 불길이 솟구쳤다. 줄리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는 거칠게 몸을 돌려 내 턱을 움켜쥐었고, 그의 눈에는 날것 그대로의 분노가 타올랐다. “세라피나! 설마 네가 불을 지른 거야? 그저 투정이나 부리는 줄 알았더니, 설마 경쟁 조직과 손잡고 이런 치명적인 짓까지 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분명히 말해두는데, 미아를 여기 머물게 한 건 나야! 그 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는 나를 거칠게 밀쳐낸 뒤 몸을 돌려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냥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순간, 이혼에 급히 필요한 혼인증명서 원본과 부모님의 유품 몇 가지가 모두 침실 금고 안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몸을 돌려 뜨거운 열기를 뚫고 다시 안으로 뛰어들었다. 줄리안이 반쯤 정신을 잃은 미아를 안고 달려 나오는 동안, 아파트 안에는 짙은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그가 나를 보자 눈빛이 즉시 차갑게 변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가!” 나는 그를 무시하고 곧장 침실로 달려갔다. 불길은 이미 커튼을 핥고 있었고, 금고는 불타고 있는 옷장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세라피나! 미친 거야? 당장 나와!” 줄리안이 문간에서 포효했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바닥에 몸을 낮추고 금고의 다이얼을 빠르게 돌렸다. 무거운 금속 금고문을 힘껏 잡아당겨 여는 순간, 천장에 달린 낡은 샹들리에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줄리안은 본능적으로 미아를 자신의 몸 아래로 감싸며 뒤로 빠르게 몸을 굴려 떨어지는 샹들리에를 피했다. 나는 거대한 충격파에 뒤로 튕겨 나갔다. 날카로운 나무 파편과 깨진 유리 조각이 순식간에 내 등에 박혔고, 코트는 빠르게 피로 물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유품과 혼인증명서 원본이 들어 있는 서류철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짙은 연기가 폐 속으로 밀려들었고, 시야가 조금씩 어두워졌다. 의식을 잃기 직전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미아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는 줄리안의 발소리와, 멀리서 울려 퍼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뿐이었다. 4장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조직의 사립 병원 VIP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줄리안은 목숨을 걸고 건져 올린 폴더를 뒤적이고 있었다. 가장자리가 새까맣게 그슬린 혼인증명서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이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 하나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그의 목소리가 불신으로 팽팽하게 조여 있었다. “당신 지금 왼쪽 종아리 미세 골절에 폐렴까지 왔어. 의사가 그러는데, 10분만 늦었어도 죽었을 거래!” 나는 손을 뻗어 폴더를 낚아채듯 빼앗아 품에 안았다. 이 원본 서류가 없으면 변호사를 통한 신속한 이혼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 줄리안은 내가 폴더를 감싸 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물러서기만 했어도 모두가 살아서 나왔을 거야. 그런데 굳이 이런 꼬인 판을 벌여서 나한테 선택을 강요했지. 내 마음속에서 네가 차지하는 순위를 그토록 증명하고 싶었던 거야?” “이번 건은 라이벌 조직의 소행이었어. 미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민간인이니까 내가 먼저 보호하고 빼낸 거라고. 반면에 넌 누구보다 거리에서 살아남는 법을 잘 알잖아.” 나는 천장에 달린 전등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래.” “자기야.” 그가 내게 가까이 몸을 숙이며 목소리를 부드럽게 가라앉혔다. “내가 예전에 말했잖아, 이제 정착할 거라고. 하지만 미아는… 그 집안이 도박 빚에 허덕이고 있고, 어머니 심장도 안 좋아서 그런 거야. 그냥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만 하는 거라고.” 그는 입으로는 나를 아내로 여긴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행동은 그녀를 향한 집착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고여 있는 물처럼 내 눈동자에는 일렁임조차 없었다. “알아. 충분히 이해해.” 나의 차가운 무관심에 한계까지 몰린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내 어깨를 가로지르는 붉은 화상 흉터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세라피나, 우리 아이를 잃었던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한 고문이 아니었어? 날 피눈물 흘리게 하려고 네 몸까지 이렇게 망가뜨려야만 했어?” “오해가 지나치네. 다시는 그런 미련한 짓 안 해.” 그가 무언가 더 말하려 입을 달싹였지만,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통창 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미아의 가녀리고 속절없는 흐느낌이 귓가를 스쳤다. 줄리안은 목소리를 낮추어 그녀를 잠시 달래더니, 전화를 끊고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우리 사업 구역 중 한 곳에 쥐새끼가 꼬여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어. 사무실에 가봐야겠어. 여기 남아서 치료나 잘 받아.”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며칠 동안 나는 조용히 병실에 머물렀다. 줄리안은 부하들을 시켜 비싼 영양제 상자와 붉은 장미 한 다발을 보내왔다. 병실의 유선 전화는 매일 시계추처럼 울려댔다. 나는 당직 간호사를 시켜 매번 이렇게 받게 했다. “환자 상태는 안정적입니다. 면회는 받지 않습니다.” 퇴원하는 날, 나는 진통제를 타기 위해 극심한 통증을 참아가며 홀로 병원 약국으로 내려갔다. 처방전을 창구에 내밀자마자, 중년 여성이 나를 홱 밀치며 새치기를 해왔다. “내 사위가 이 구역 보스야! 내가 왜 이따위로 줄을 서서 기다려야 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줄 서서 기다리세요.”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 “네가 뭔데 나서? 내 사위가 보스 줄리안이라고! 내 약 타는 거 늦춰지면 네가 감당할 수 있어?” 마침 복도 저편에서 줄리안과 미아가 급하게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나를 벽 쪽으로 끌어당기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미아 어머니는 심장이 약해서 감정적인 충격을 받으면 안 돼. 너는 마피아 보스의 와이프잖아. 민간인 양보하는 게 당연한 거야.” 미아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르케티 부인, 정말 죄송해요… 엄마가 화가 나면 병이 도져서요. 비싼 약을 부담스러워하실까 봐 줄리안이 제 약혼자라고 둘러댄 것뿐이에요.” “보스께도 화내지 말아 주세요. 보스는 의리를 중시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차마 못 보시는 분이라서 그래요.” 나는 조용히 내 앞에 선 세 사람을 응시했다. 미아의 어머니가 아프다고 엄살을 떨자마자, 그는 뼈가 부러지고 화상을 입은 아내를 병실에 혼자 내버려 둔 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올 수 있는 남자였다. 됐다. 이제 이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돌아서 걸었다. 두 걸음도 채 떼지 않았을 때, 미아의 부드럽고 훌쩍이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줄리안, 마르케티 부인 화나셨을까? 지난번처럼 또 난동 부리시면 어쩌지? 당신한테 짐이 될까 봐 너무 무서워…” 줄리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모든 단어가 내 귓가에 선명하게 박혔다. “신경 쓰지 마. 쓸데없는 생각도 하지 말고. 고아원 출신이라 그런지, 눈앞에서 남이 피를 흘려도 동정할 줄 모르는 여자야.” 5장 나는 코트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준 채 대리석 복도를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뒤에서 줄리안의 가죽 구두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세라피나, 차 준비해 놓을 테니까 저택으로 들어가.” 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오히려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바닥에 무언가에 발이 걸려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새로 감아둔 화상 붕대가 순식간에 터져 나오며 붕대 위로 시뻘건 피가 배어 나왔다. 넘어지는 충격은 끔찍할 정도로 잔인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바스러지며, 내게 남아 있던 마지막 비참한 희망의 조각까지 모조리 앗아갔다. 나는 이를 악물었지만, 아무리 멈추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쏟아져 내렸다. 수녀원 고아원에서 자라난 내게 가장 큰 두려움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따스하게 새어 나오는 창가와 남의 집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볼 때마다, 밀려드는 질투는 무딘 칼로 내 살점을 조각조각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줄리안은 그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는 남몰래 눈물 흘리는 여자를 감싸 안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그 오래된 상처를 사정없이 후벼 파고 있었다. 그가 급히 달려와 바닥에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려 하며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지금 꼭 이렇게 독하게 굴어야겠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뜨거운 블랙커피가 담긴 컵이 내 얼굴을 향해 내던져졌다. 시커먼 액체가 온몸에 쏟아졌고, 낡고 무거운 가죽 핸드백이 관자놀이를 강타하며 순식간에 퉁퉁 부어올랐다. 미아의 어머니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미친 사람처럼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소리쳤다. “이년 봐라! 어디서 감히 내 사위한테 수작이야? 가정이 있는 남자를 홀리는 더러운 년 버릇을 고쳐놔야지!” 그녀가 벼락같이 달려들어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고, 그 충격에 고개가 확 꺾이며 나는 바닥으로 스르륵 주저앉았다. 뒤이어 뻣뻣한 가죽 가방이 내 어깨를 무참히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뼈마디로 충격이 전해졌고,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녀가 세 번째로 가방을 휘두르려 할 때, 줄리안이 그녀의 팔목을 낚아채듯 움켜잡았다. “그만하세요! 진정하세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무슨 뜻인데!” 늙은 여자가 악을 썼다. “이 창녀 같은 년이 너한테 엉겨 붙잖아! 내가 눈이 먼 줄 알아?” 나는 커피로 얼룩진 타일을 짚으며 비틀비틀 일어섰다. “당신 딸 단속이나 똑바로 하세요. 남의 남자에 빌붙어 몸을 파는 진짜 첩년이 그년인 건 그쪽도 잘 알 테니까!” 줄리안이 고개를 확 돌리더니, 오직 우리 둘만 들을 수 있는 낮고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심장이 안 좋아서 충격 받으면 큰일 난다고! 부탁이니까, 제발 난리 좀 피우지 마!”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몸을 돌려 그녀를 부축했다. 그의 말투는 순식간에 180도 달라져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부드러워졌다. “오해가 있으셨나 봐요. 이 사람은 그냥… 아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아이를 잃어서 몸이 많이 안 좋아요…” 그는 내가 방금 받아온 고강도 진통제 처방전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변명했다. 그녀는 그것을 힐끗 보더니 콧방귀를 뀌고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어쩐지! 어째 잡귀라도 서린 줄 알았지! 됐어, 불쌍해서 오늘은 그냥 넘어간다!” 줄리안은 모녀를 반쯤 부축하다시피 하여 복도 바깥으로 호위하듯 데려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나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커피 범벅이 된 바닥에 주저앉아 그가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6장 떨리는 손길의 간호사가 나를 처치실로 부축해 들어가 찢어진 상처를 소독하고 다시 붕대를 감아주었다. “마르케티 부인.” 그녀가 수화기 위에 손을 올린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스를... 불러 드릴까요?” 나는 차분하게 손을 뻗어 수화기를 제자리로 눌러 내렸다. “필요 없어요.”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혼자 갈게요.”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침실로 올라가 옷장에서 단정한 옷 몇 벌을 골라 작은 여행용 가방에 챙겨 넣었다.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미아가 SNS 상태를 업데이트한 것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줄리안의 짙은 회색 정장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였다.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이 사람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예요.] 표정 없는 얼굴로 눈이 부실 듯한 그 사진을 넘겨버린 뒤,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 ‘차단’을 눌렀다. 대문 밖에는 미리 예약해 둔 차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챙겨 뒷좌석에 올라탄 뒤 기사에게 주소를 건넸다. “센트럴역이요. 산 셀로노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타야 해요.” 엔진이 묵직하게 울리며 차가 저택의 철문을 통과해 천천히 빠져나갔다. 큰길로 막 접어들었을 때, 반대편에서 검은색 세단 행렬이 다가와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선두 차량의 뒷좌석 창문이 반쯤 내려져 있었다. 줄리안은 고개를 돌린 채 옆에 앉은 사람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미아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달콤하고도 새처럼 앙증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차량은 완전히 반대 방향을 향해 질주했다. 백미러 속에서 내가 6년 동안 살았던 하얀 저택은 점점 작아지더니 밤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삼켜졌다. 17살 때,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고아원의 철문을 넘어 도망쳤다. 20살 때, 나는 야구 방망이를 든 채 그의 곁을 지키며 거리에서 우리의 첫 구역을 사수했다. 22살 때, 우리는 사우스사이드의 그 작은 예배당에서 서로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28살 때, 나는 내 것이 아닌 향수 냄새를 풍기며 거듭 집으로 돌아오는 그를 지켜보았다. 이 모든 기억들은 차창 밖의 가로등처럼 하나둘 뒤로 밀려나 멀어졌다. 나는 손을 들어 손가락에서 루비 반지를 빼냈다. 그리고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자, 반짝이는 호선을 그리며 날아간 반지가 어두운 하수구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정말로 끝이었다. 창밖으로는 포스헤이븐의 네온사인이 여전히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와 카지노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는 나와는 완전히 상관없는 거대한 축제 같았다. 나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제 나는 집으로 간다. 아버지가 남긴 이름이 새겨진 저택으로 돌아가, 20년 동안 나를 기다려 온 등받이 높은 마호가니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곳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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