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1章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 두 사람의 변호사는 양육권 합의서를 작성했다.
여동생과 나는 각각 다른 부모와 살아가며, 매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거처를 서로 맞바꾸기로 되어 있었다.
그 인계 행사는 매년 8월, 모레티 가문의 레스토랑인 ‘라 세라타’에서 어김없이 치러졌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부모님은 누가 소피아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움을 벌였다.
"추수감사절에는 나랑 같이 세인트바츠 섬에 가는 거야."
엄마가 소피아를 살살 달랬다.
아빠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다.
"소피아는 올해 나랑 지내잖아. 명절은 당연히 나와 함께 보내야지."
엄마가 캘린더 앱을 휙휙 넘겼다.
"작년에 당신이 소피아를 19일이나 더 데리고 있었잖아. 그만큼 다 돌려받을 거야. 하루도 빠짐없이 전부."
"그중 이틀은 학교 기숙사에서 잔 날들이었어. 그건 포함하면 안 되지."
소피아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지나친 사랑을 한 몸에 받아 힘겨워하는 공주처럼 어쩔 줄 모르겠다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두 명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30분쯤 티격태격하던 부모님은 결국 함께 여행을 예약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제야 소피아가 내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언니는 어떻게 하고?"
아빠는 물잔을 집어 들며 내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올해 쟤는 내 담당 아니야."
엄마가 마침내 내 시선을 마주했다.
"호텔 그룹이 다음 달에 인수합병 건을 마무리해야 해. 그럴 겨를이 없다고. 세인트 가브리엘 고등학교 기숙사에는 아직 빈방이 좀 있더구나. 거기 들어가서 살도록 해."
부모님은 소피아가 자신들과 떨어져 지낸 시간은 단 한 시간까지도 빡빡하게 따져 묻곤 했다.
하지만 나에 대해서라면, 통째로 1년이라는 세월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식탁 아래에서 나는 꽉 쥐어 구겨진 냅킨을 매만졌다.
그 순간 스마트폰 화면이 밝게 빛났다. 하퍼 선생님이었다.
[네 성적이면 동부 해안의 명문 대학 여러 곳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단다. 웨스트브리지 대학교의 연구 장학 프로그램도 너한테 아주 잘 맞을 거야. 어디가 네 지망 1순위니?]
나는 지도 속 반대편에 있는 캘리포니아를 바라보며 답장을 꾹꾹 눌러 담았다.
[웨스트브리지요.]
3천 마일이라는 거리는 내 가족과 영원히 작별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충분히 먼 거리일 터였다.
1장
하퍼 선생님은 거의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부모님과는 이 일에 대해 상의해 봤니? 웨스트브리지 대학교는 뉴저지에서 거리가 꽤 멀고, 전액 연구 장학금은 별도의 면접 절차를 거쳐야 한단다.]
[아직이요. 하지만 저도 18살이에요. 이 정도 결정은 제 스스로 내릴 수 있어요.]
"에밀리아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게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네."
소피아의 목소리가 들리자 식탁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엄마가 소피아의 스테이크를 썰어주는 동안, 소피아는 부모님 사이에 앉아 있었다.
저토록 세심하게 걱정하는 듯한 표정은 소피아와 함께 자라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갈 만큼 감쪽같았다.
물론 나라고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을 리가 없었다. 엄마는 학교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펜트하우스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차라리 그 집을 텅 빈 채로 내버려 둘지언정 내가 거기서 지내도록 허락할 사람은 아니었다.
" 한 번만이라도 어른들 사정을 좀 봐주면 안 되겠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엄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 기업 인수는 앞으로 5년 동안 델루카 호텔의 운명을 결정지을 일이야. 만약 네가 나와 함께 지내다가 네 감정적인 위기 중 하나라도 놓치기라도 하면, 넌 분명 내가 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난할 거잖아."
아빠가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그게 바로 저 애 특기야. 작년에 학부모 상담을 딱 한 번 빼먹었더니 일주일 내내 내게 말도 안 붙이더군. 마치 내가 애 돈이나 타 쓰며 사는 사람인 줄 알겠어."
엄마는 내게 그 익숙하고도 실망스럽다는 눈빛을 던졌다.
"네 동생은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단다. 지금이 한창 대학 진학을 준비해야 할 시기라고. 아빠가 동생 진학 상담 교사를 먼저 만나는 게 어때서 그러는 거야?"
"고등학교 3학년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제가 3학년일 때에는 왜 두 분 다 아무도 오지 않으셨는데요?"
엄마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건 소피아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잖아. 애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였어."
"소피아 오리엔테이션은 제 상담 날짜와 겹치지도 않았어요. 두 분 일정에 문제가 있던 게 아니라고요. 그냥 잊어버리신 거죠."
그날만큼은 으레 하던 대로 변명을 늘어놓는 그들을 두둔해 주지 않았다.
아빠는 즉시 이 일에서 손을 털어버리겠다는 듯 나섰다.
"그 해에 너를 맡아 돌본 건 네 엄마야. 그러니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니지."
소피아는 포크로 접시를 톡톡 두드렸다.
"제발 그만해, 언니. 1년에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식사는 오늘이 유일하잖아. 겨우 그깟 상담 한 번 때문에 언제 적 일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옛날 얘기까지 꺼내야겠어?"
겨우 상담 한 번이라고?
나는 텅 빈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던 지난 10년의 세월을 떠올렸다.
서명조차 없이 되돌아오던 생일 안내문들과, 부모 각자가 상대방이 서류를 챙겼을 거라고 굳게 믿는 바람에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현장 학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두 사람 그 누구의 서명도 위조하고 싶지 않았기에 교무실 밖에 덩그러니 앉아, 행정직원이 부모 중 한 명의 비서와 연락이 닿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겨우 연결이 되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대동소이했다.
[이번 주는 저희 담당이 아닙니다. 다른 쪽 집으로 연락해 보세요.]
기숙사 입소 날이면 다른 부모들은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올랐지만, 나는 커다란 더플백 두 개를 혼자서 4층까지 끌고 올라가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열린 과학 박람회에서는 한 심사위원이 내게 가족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나는 내가 상을 탄 작품 옆에 꼿꼿이 서서 아빠의 비행기가 지연되었고, 엄마는 열이 심하게 난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실제로는 불과 두 블록 떨어진 곳에서, 순위도 매기지 않는 어린이 승마 대회에 출전한 소피아를 구경하고 있던 중이었으면서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재정 보조 담당관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에밀리아, 이 말을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너의 보호자분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학교 행사에 단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고, 우리의 확인 이메일에 답신을 준 적도 없단다. 혹시 위탁 가정에 있거나, 부모님과 별거 중이거나, 아니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니?"
담당관의 다정한 그 말은 오히려 내게 모멸감을 더욱 깊게 안겨주었다.
"위탁 가정에 있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 두 분 다 이 도시에 살고 계시고, 돈 문제도 전혀 없어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말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내 문은 열려 있단다."
작년에는 학부모 상담 한 달 전에 아빠에게 미리 상기시켰고, 아빠는 반드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아빠가 학교 건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그때 소피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아빠는 선택 과목 변경을 도와달라는 소피아의 말 한마디에 그대로 돌아서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버렸다.
나는 아빠의 텅 빈 의자 옆에 다시 주저앉아 상담이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제 10년 동안 기다려 온 그 시간들은 내가 그저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어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웨스트브리지 대학교를 바라보자, 가슴 한구석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지끈거리던 통증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기다리는 짓 따위는 집어치우기로 마음먹은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2장
디저트가 나올 무렵, 부모님은 다시 소피아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엄마는 소피아에게 더 실력 있는 사설 대학 진학 컨설턴트를 붙여주고 싶어 했고, 아빠는 자신의 컨설턴트가 훨씬 더 강력한 인맥을 가지고 있다고 고집을 피웠다.
두 사람은 마치 패배자가 되면 자신의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놓치기라도 할 것처럼, 누가 비용을 댈 것인지를 두고 언쟁을 벌였다.
하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내가 지원서에 어떤 학교를 적어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이 똑같은 일상을 지켜보며 살아왔다.
부모님은 소피아의 컨설턴트 이름과 여름 프로그램 마감일, 그리고 소피아의 승마 영상을 극찬했던 입학사정관이 누구인지까지 낱낱이 꿰뚫고 있었다.
소피아가 캠퍼스 이름을 단 한 번만 언급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두 사람의 책상 위에 어김없이 그 학교의 안내 책자들이 수북이 쌓이곤 했다.
반면 나는 가을 내내 하퍼 선생님과 함께 지원할 대학 목록을 추려야 했다. 부모님 중 어느 한 사람도 내가 공학을 전공하고 싶은지, 문학을 전공하고 싶은지조차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피아는 한때 나처럼 모레티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혼 소송 과정에서 엄마는 소피아가 델루카 성을 쓰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아빠는 자기 자식 중 그 누구도 모레티라는 성을 포기하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두 사람의 변호사들은 오후 내내 팽팽하게 맞서 싸웠고, 경호원들조차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문밖을 지켜야 했다.
8살이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엄마, 내가 엄마 성을 따르면 되잖아요."
나는 그게 두 사람을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화를 내기보다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증명해 줄 필요는 없어."
결국 소피아는 두 개의 성을 모두 갖게 되었다.
소피아 모레티 델루카.
그 이름은 승마 클럽의 동판과 갈라쇼의 자리표, 그리고 이니셜이 새겨진 고급 여행용 가방 위에 어김없이 새겨졌다.
그것은 두 개의 강력한 가문이 소피아에게 자신들의 소유권을 도장처럼 찍어 누르는 방식이었다.
오직 나만이 평범한 에밀리아 모레티로 남겨졌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엄마는 직접 소피아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주었다.
"가서 새 방을 구경하자꾸나. 아빠가 여자아이 방치고는 너무 차가운 느낌의 커튼을 골라놨더라고."
나는 현관문 앞에서 엄마를 가로막았다.
"내 졸업식 비용이랑 대학 학점 선이수제 시험 응시료, 그리고 대학 원서 접수비 아직 입금 안 됐어요."
엄마는 멈춰 서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소피아의 학교 관련 경비는 내가 전부 처리했어. 네 것은 아빠한테 물어보렴."
아빠가 인상을 찌푸렸다.
"에밀리아는 올해 당신 담당인데, 왜 모든 고지서가 내 손으로 들어오는 거야?"
"당신이 아빠니까."
"돈이 필요할 때만 아빠라는 거야?"
두 사람은 또다시 소리 없는 싸움을 시작할 채비를 했다.
나는 학교에서 온 납부 고지서를 손에 쥔 채 로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문밖에는 차 두 대와 경호원 네 명이 기다리고 있었고, 호텔 지배인이 직접 나서서 엄마의 차 문을 열어주었다.
모레티와 델루카라는 성은 벨뷰 하버의 온갖 장애물을 단숨에 치워버릴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친딸의 기본적인 학교 공납금조차 제대로 내주지 못했다.
마침내 아빠가 내 학생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원서 접수비는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드는 거냐? 책상물림으로 공부만 잘하고 사람 다루는 법을 모르면 현실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힘들어."
이어 아빠는 빈정거리듯 말을 이었다.
"네 성적으로 과연 대학이나 제대로 갈 수는 있겠니? 널 받아주지도 않을 학교들에 내 돈을 낭비하지 마라."
나는 계좌에 입금되었다는 알림 메시지가 뜨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일주일 전, 세인트 가브리엘 고등학교에서는 졸업 학년의 전체 등수를 발표했다. 나는 전교 1등으로 모든 과목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으며, 6개의 대학 학점 선이수제 시험에서 모두 만점에 가까운 최고점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내 손을 직접 붙잡고 웨스트브리지 대학교의 장학 증서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다. 성적이 발표되자마자 부모님 두 사람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장학금 수여식 초대장 역시 두 사람의 개인 이메일과 비서들의 계정으로 전달했다.
엄마가 보내온 답장은 단출했다.
[이건 아빠한테 보내렴. 올해 학교 일은 내 담당이 아니야.]
아빠는 끝내 아무런 답장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의도적으로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그들에게 인정받을 일도, 그들을 필요로 할 일도 없을 터였다.
3장
10월, 세인트 가브리엘 고등학교에서는 '우수 학생 가족 초청의 밤' 행사가 열렸다.
그해 최고의 상을 받는 학생들은 가족과 함께 강당을 걸어 들어간 뒤, 무대 위에서 학교의 상징인 문장과 명예의 어깨띠를 수여받게 되어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로비는 부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떤 아버지는 시카고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고, 어떤 어머니는 병원 교대 근무가 끝나자마자 수술복 차림 그대로 도착했다.
해외에서 일하느라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를 둔 학생들은 조부모나 손을 잡고 온 나이 든 형제자매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내 옆자리만은 텅 빈 채로 비어 있었다.
부모님들은 이미 캠퍼스 안에 있었다. 그들은 다른 건물에서 소피아와 그녀의 사설 컨설턴트를 만나 여름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엄마는 호텔의 홍보 이사까지 대동하고 왔고, 아빠는 항만 관련 중요 회의까지 미루고 온 참이었다.
그들은 불과 3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내 순서가 되기 직전, 모레티 가문을 잘 아는 한 학부모가 서둘러 부모님을 강당 안으로 이끌었다.
"에밀리아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와주시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안도하기는커녕, 마치 대중 앞에서 덜컥 꼬리를 잡힌 사람들처럼 곤혹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거 얼마나 걸려? 소피아 컨설턴트가 우리한테 딱 한 시간만 비워줬단 말이야."
아빠는 붉은 카펫이 깔린 통로를 힐끗 바라보았다.
"당신이 쟤랑 같이 걸어. 올해 보호자는 당신이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 너무 보여주기식이잖아."
"그럼 내가 하란 소리야? 항만 위원회 사람들의 절반이 여기에 와 있다고."
"쟤는 당신 딸이잖아."
"올해는 당신 담당이거든."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이 추한 모습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더욱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그때 진행자의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올해 최고 성적 영예의 수상자는… 에밀리아 모레티!"
우렁찬 박수갈채가 장내를 가득 채웠지만, 내 부모님은 여전히 내 옆에 누가 서야 할지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싸움을 중재하지 않았다. 나를 선택해 줄 기회를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 나는 두 사람의 틈바구니를 지나쳐 혼자서 통로를 걸어 나갔다.
환한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자, 진행자가 순간 말을 더듬었다.
다른 모든 학생들은 한 명 혹은 두 명의 친족과 함께 걸어 나왔지만, 나는 그 긴 거리를 오롯이 혼자서 채워 나갔다.
사진작가는 누군가 내 뒤를 쫓아와 합류할 줄 알았던 것인지 잠시 카메라를 내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 뒤쪽에는 부모님이 제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 있었고, 서로가 상대방보다 더 많은 수고를 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단 한 걸음조차 먼저 내딛지 않으려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꼿꼿이 치켜든 채 상징 문장을 받아 들고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멈춤 없이 강당 반대편을 향해 걸어갔다.
가장 친한 친구인 마야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야는 나를 왈칵 품에 안아주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부모님이 서 있는 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부모님들 오셨잖아. 왜 너랑 같이 걸어 나오지 않은 거야?"
"누구든 나와 함께 걸어 나오는 순간, 그건 귀찮은 책임 하나를 떠안는 게 되니까."
마야가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였지만, 차마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다른 학생이 부모의 품에 안겨 환하게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그 광경을 보는 마음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사랑받을 만큼 충분히 괜찮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여겼었다.
나는 결코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고, 돈을 헤프게 쓰지도 않았으며, 모두의 취향을 낱낱이 기억했고,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가장 이치에 맞는 부드러운 말들로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내가 일등을 휩쓸고 다닌 것도 어쩌면 그 상장들 중 하나쯤은 그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하게 만들어 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내가 그렇게 발버둥 쳐도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단 한 번도 노력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소피아가 나보다 더 우월해서도, 내가 무언가를 실패해서도 아니었다. 애초에 사랑이란 완벽한 성취를 이뤄낸 대가로 주어지는 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단지 나를 위해 줄 사랑을 애초부터 남겨두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그들을 바꾸려는 헛된 노력을 그만두기로 했다. 더 이상 그들에게 내 미래의 가장 앞자리 좌석을 내어줄 필요조차 없었다.
4장
가을 방학을 앞둔 마지막 날 오후, 학교 건물 밖에는 아빠의 숯불 검은색 벤틀리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니셜이 새겨진 고급 여행용 가방 세 개가 트렁크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엄마는 소피아의 스카프를 매만져 주고 있었다. 아빠는 소피아가 놔둔 태블릿 PC를 들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내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가 벤틀리 차 문 앞을 가로막아 서며 말했다.
"너는 햇빛을 싫어하잖아. 버뮤다는 너한테 어울리지도 않아. 여기에 남아서 대학 지원서나 준비하는 게 이번 방학을 훨씬 알차게 보내는 방법일 거야."
아빠는 차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고, 운전기사에게 내 가방을 실으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가 버뮤다 여행에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러 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빠, 엄마. 저 같이 안 가요. 제 식대 계좌 잔액이 바닥났어요. 엄마가 보내주셔야 할 생활비도 아직 안 들어왔고요."
엄마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는 핸드백을 뒤적이며 말했다.
"공항에 늦겠어. 빅터, 일단 애한테 돈 좀 보내줘."
아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올해 학교 담당은 당신이잖아."
"쟤는 당신 딸이기도 해."
"난 지난달에 시험 응시료까지 다 냈다고. 왜 자꾸 모든 고지서를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야?"
교문 앞을 지나는 경비 직원들과 운전기사들, 그리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두 사람은 마치 잘못 배달된 청구서를 두고 싸우듯 나에 대해 논의했다.
소피아는 가방 안을 뒤져 무선 이어폰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어폰 대신 검은색 가죽 케이스가 툭 튀어나왔고, 그 안에서 새로운 자동차 키 하나가 아스팔트 바닥 위로 튕겨 나갔다.
주차장 건너편에는 샴페인 색상의 리본이 예쁘게 묶인 새하얀 포르쉐 한 대가 서 있었다.
소피아는 허겁지겁 케이스를 주워 담았다.
"엄마랑 아빠가 좋은 성적 거둔 기념으로 선물해 주신 거야. 언니랑은 아무 상관없어."
아빠의 미간에 서려 있던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피아 성적이 0.03점 올랐거든. 열심히 노력했으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아야지."
나는 그 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소피아, 전교 등수는 어떻게 됐어?"
소피아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미소가 굳어버렸다.
엄마가 재빨리 대답했다.
"등수가 전부가 아니야. 소피아는 훨씬 더 어려운 과목들을 골라서 들었다고."
"영화 감상과 이벤트 기획 수업이요? 그래서 주요 과목 성적은 어떻게 되는데요?"
"에밀리아."
엄마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동생의 기쁜 순간마다 꼭 그렇게 찬물을 끼얹어야 직성이 풀리니?"
학교 공지판에 붙는 공식 성적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벤트 기획 과목에서 받은 가산점 덕분에 소피아의 전체 평점은 간신히 올라갔지만, 주요 과목 세 개는 모조리 떨어져 있었다.
그 결과 전교 등수는 38등에서 44등으로 곤두박질쳐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적표의 진실을 완벽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소피아에게 상을 주고 싶을 때면 어떤 수치든 '발전'의 증거로 포장할 수 있었으니까.
아빠가 팔짱을 낀 채 쏘아붙였다.
"그렇게 성적에 목을 매는 애가 네 성적이나 신경 쓰지 그러냐? 고급 미적분학 점수가 100점에서 97점으로 떨어졌다며?"
그 시험은 세인트 가브리엘 고등학교에서 지난 5년 동안 치러진 시험 중 가장 악명 높은 난이도를 자랑했다. 반 평균 점수가 71점에 불과했고, 하퍼 선생님은 내 답안지 복사본을 주립 수학 협회에 따로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빠의 머릿속에는 내가 깎여 나간 단 3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제 전교 등수가 몇 등인지는 아세요?"
아빠는 질문 자체가 가소롭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엄마가 벤틀리에 올라타며 쏘아붙였다.
"그만해. 소피아 말대로 네가 조금만 더 철이 들었다면, 우리가 비행기를 타러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돈 타령을 하며 쫓아오지 않았을 거야. 도착하면 처리해 줄 테니까 그만해."
문이 닫히기 직전, 엄마가 낮게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는 얼굴만 보면 손부터 벌린다니까."
다음 날이 되었지만 내 식대 계좌는 아직 바닥나 있었다.
엄마에게 두 번이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고, 대신 엄마는 프라이빗 요트 위에서 찍은 소피아의 사진 9장을 SNS에 업로드했다.
아빠의 비서가 전해온 아빠의 답변은 냉랭했다.
[현재 학년도 동안에는 델루카 부인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다못한 마야가 결국 내 쪽으로 자신의 학생 식권 카드를 밀어주었다. 내가 거절하자, 마야는 저녁 식사 두 개를 주문한 뒤 식당에서 주문이 잘못 들어온 것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날 밤 10시가 되어서야 엄마는 송금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 시각, 아빠는 가족 단체 채팅방에 소피아가 멀미약과 자외선 차단제를 충분히 챙겼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는 그 질문에 12개가 넘는 답장을 쏟아부었다.
부모님은 소피아가 유제품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 어떤 베개를 베고 자야 잠을 잘 자는지, 그리고 과거에 배멀미를 했던 그 스무 분 동안의 일까지 낱낱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억력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책임감을 짊어질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나를 사랑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 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자, 수년 동안 겪어본 적 없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는 그날 밤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