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추출기로 진실이 드러날 때

GoodNovel new 완결

친구 희진이는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그 범인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자의 범죄를 직접 덮어주었다. 희진이 어머니는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지만, 나는 차갑게 외면하고 돌아섰다. 마을 사람들이 나를 양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욕하며 집 대문을 부수자, 나는 망설임 없이 개를 풀어 사람들을 물게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수년간 모습을 감췄던 친구 손청아가 돌아왔다. 세계 최고 부자가 되어 돌아온 손청아는, 사형수에게만 사용되는 기억 심판대에 나를 가장 먼저 올려놓았다. “성폭행범을 감싸준 이 짐승 같은 년! 나랑 희진이가 정말 눈이 멀었지. 너 같은 걸 친구라고 믿다니!” “희진이 죽은 지 벌써 10년이야. 그런데 넌 범인을 10년이나 자유롭게 내버려뒀어!” “오늘 내가 개발한 기억 추출기로, 네가 숨겨준 범인이 대체 누구인지 똑똑히 밝혀내겠어!” ... 진짜 범인이 모든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손청아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충격에 휩싸인 손청아는 무릎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챕터 (1)

第1章

친구 희진이는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그 범인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자의 범죄를 직접 덮어주었다. 희진이 어머니는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지만, 나는 차갑게 외면하고 돌아섰다. 마을 사람들이 나를 양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욕하며 집 대문을 부수자, 나는 망설임 없이 개를 풀어 사람들을 물게 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수년간 모습을 감췄던 친구 손청아가 돌아왔다. 세계 최고 부자가 되어 돌아온 손청아는, 사형수에게만 사용되는 기억 심판대에 나를 가장 먼저 올려놓았다. “성폭행범을 감싸준 이 짐승 같은 년! 나랑 희진이가 정말 눈이 멀었지. 너 같은 걸 친구라고 믿다니!” “희진이 죽은 지 벌써 10년이야. 그런데 넌 범인을 10년이나 자유롭게 내버려뒀어!” “오늘 내가 개발한 기억 추출기로, 네가 숨겨준 범인이 대체 누구인지 똑똑히 밝혀내겠어!” ... 진짜 범인이 모든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손청아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충격에 휩싸인 손청아는 무릎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제1화 손청아는 나를 심판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판을 벌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광장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만큼 인파로 가득했다. 기자들은 카메라를 설치하고 현장을 생중계했고, 생중계 화면은 각종 플랫폼을 가득 메웠다.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약과 영양액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던 나는, 마치 죄인처럼 사람들에게 붙들려 광장 앞까지 끌려갔다. 그 순간 한 남자가 달려들어 내 목을 죽일 듯이 움켜쥐며 소리쳤다. “왜 범인을 감싸는 거야!” “이 짐승 같은 년! 네가 우리 가족을 이렇게 만들었어! 그런데 왜 죽지 않는 거야!” 나는 목이 졸려 숨이 거의 끊어질 듯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자 군중이 일제히 들끓기 시작했다. “저 양심도 없는 인간이야! 친구가 강간당했는데 범인이 누군지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잖아!” “친구가 강에 뛰어들어 죽었는데, 피해자 어머니가 머리가 깨질 정도로 빌어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대.” “게다가 개까지 풀어서 사람을 물게 했다잖아. 진짜 인간도 아니야!” 쏟아지는 욕설이 파도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손청아는 옆에 서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강희진의 가족을 제외하면, 나를 가장 증오하는 사람은 단연 손청아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강희진, 손청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하지만 강희진이 우리 집 근처 숲에서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나와 손청아의 관계도 완전히 무너졌다. 강희진이 남긴 유서에 내가 범인을 봤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강간범의 공범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범인을 감쌌다. 손청아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얼굴에는 일말의 온기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줄게.” “지금이라도 범인이 누군지 밝히고 경찰에 자수해. 아직 늦지 않았어...” “그렇지 않으면 기억 추출기가 작동되는 순간, 고주파 펄스가 네 온몸의 뼈를 999번이나 짓이긴 것 같은 고통을 안겨줄 거야. 그때 가서 변명하려 해도 기회는 없어!” 그 말에 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안 돼!” “내 기억을 추출하면 안 돼!” 손청아는 내 손을 억세게 붙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 “무서워?” “하지만 이건 네 마음대로 될 일이 아니야!” “나는 반드시 희진이의 억울함을 풀어줄 거야!” 나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내 말 좀 들어줘. 내 기억은 공개되면 안 돼. 너 분명 후회할 거야.” 손청아는 비웃음을 흘리며,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후회?” “내가 가장 후회하는 건 너와 친구로 지냈던 거야!” 두 명의 경호원이 곧바로 나를 철제 의자에 고정했고, 차가운 금속이 내 손발을 단단히 묶었다. 나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강제로 제압당한 채 차가운 헬멧이 내 머리에 씌워졌다. 순간, 수많은 바늘이 두피를 뚫고 머릿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극심한 고통에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고, 영혼이 찢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무대 아래 구경꾼들은 여전히 분노에 차 있었다. 사람들은 무대 위로 썩은 채소와 계란을 계속 던지며, 끊임없이 나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독한 년! 악인의 앞잡이! 지옥에나 떨어져!” 그리고 대형 스크린에 내 기억이 빠르게 역재생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억이 사람들 앞에 떠올랐다. 첫 장면은 강희진이 죽은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나는 강희진의 빈소 앞으로 끌려갔고,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범인이 누구인지 다그쳤다. 사람들은 나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누군가는 내 팔을 사정없이 붙잡았고,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마구 잡아당겼다. 수많은 주먹이 나에게 날아들었고, 나는 얼굴이 멍들고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나는 허둥지둥 현장을 빠져나왔고, 뒤에서는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쫓아왔다. 눈앞에는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내 집은 격분한 마을 사람들에 의해 불타고 있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제2화 갈 곳이 없어진 나는 누렁이를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나를 찾아냈고, 내 눈앞에서 나와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누렁이의 가죽을 산 채로 벗겨냈다. 그리고는 누렁이를 삶아 한 솥의 국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누렁이의 다리뼈를 품에 꼭 끌어안고 가슴이 찢어질 듯 울었다. 그해, 부모도 없이 홀로 살아가던 나는 고작 16살이었다. 손청아는 대형 스크린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네가 그런 결말을 맞은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범인을 감싸지만 않았어도 사람들이 너한테 이렇게 했을 것 같아?” “그런데도 네가 억울하다는 거야?”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억울한 척할 자격이 없어! 범인을 감싸준 주제에... 전부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주변 사람들도 맞장구쳤다. “진짜 뻔뻔하기 짝이 없네! 아직도 자기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비참한 기억을 보여주면서 사람들한테 동정이라도 얻어보려고? 정말 어이가 없네!” “범인을 감싸준 건 공범이나 다름없어! 그런 인간은 지옥에나 가야지!” “어디서 감히 불쌍한 척이야? 강희진네 가족이 얼마나 비참한데!” “딸을 잃고 엄마는 미쳐버렸다고. 세상에 저 여자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어!” 바로 그때, 대형 스크린에서 한 소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희진아, 천천히 가!” 강희진의 풋풋하고 어린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속에서 강희진은 해맑게 웃으며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받아라!” 강희진은 눈덩이를 뭉쳐 내게 힘껏 던졌다. “희진아!” 강형준이 울부짖으며 스크린 앞으로 달려와 매달렸다.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강희진을 바라보며, 강형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 놓아 울었다. 10년 전 강희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원래 밝고 말수가 많았던 이 남자는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셌다. 강형준은 그동안 매일 경찰서에 찾아가 경찰에게 물었다. “범인은 잡았나요?” 하지만 경찰은 매번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당시 마을에는 CCTV가 없었고, 우리 집은 다른 집들과 떨어진 외딴곳에 있었다. 그날 밤 누가 강희진을 뒤따랐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진실을 아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한바탕 뛰어다니며 장난을 친 뒤,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산신령 석상 앞에 무릎 꿇고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 제발 제 친구 희진이가 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우리 우정도 영원히 이어지게 해주세요...” 내 경건한 모습을 보며 손청아는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했다. “너 같은 가식적인 인간이 어디 있어! 진심이라고는 없는 배은망덕한 년!” 손청아는 빠르게 다가와,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나를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네가 무슨 낯짝으로 우리 어린 시절을 떠올려! 역겨워 죽겠어!” “10년 동안, 너는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어. 그런 네가... 아직도 친구라고 할 자격이 있어?” 그리고 다음 장면에는 내가 몰래 강희진이 준 망고를 버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발칵 뒤집혔다. “와, 망고까지 줬는데 앞에서는 고마운 척하더니 뒤에서는 갖다 버렸네!” “손 대표랑 희진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자기 친구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냥 이기적이고 냉정하게 방관하는 공범이나 다름없지!” 손청아는 내가 망고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손청아는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군중이 계속해서 나를 비웃고 조롱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손 대표님이 세계 최고 부자가 되어 돌아와 자기한테 복수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손 대표님, 어서 진행하세요! 우리도 범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하다고요!” 사람들의 욕설과 재촉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형 스크린의 기억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손청아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화면 너머에서 들려왔다. “희진아, 죽으면 안 돼!” 그날은 강희진의 시신이 강에서 인양된 날이었다. 보슬비가 그치지 않았고, 나와 손청아는 강희진의 시신 앞에 엎드려 목 놓아 울었다. 물에 오래 잠겨 있던 강희진의 몸은 퉁퉁 부어 있었고, 온몸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웃음 많던 그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제3화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와 구석에 웅크린 채 목 놓아 울었다. “아...!” 나는 미친 듯이 가슴을 두드렸다.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잃은 슬픔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만 같았다. 한편, 심판대 위의 나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곧이어 화면 너머로 내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희진아... 왜 죽은 거야...” 내 눈물은 점점 많아졌고, 온몸은 끝없는 고통 속에 잠겨 있었다. 그토록 비통해하는 내 모습을 본 순간, 광장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왜 저렇게 슬퍼해? 대체 왜...” 강형준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악어의 눈물이지!” 강형준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때 내 아내가 저년 집 앞에 무릎 꿇고 머리가 깨질 정도로 빌었어! 그런데도 문 한 번 열어주지 않았지!” “게다가 개까지 풀어서 사람을 물게 했다고! 저런 인간이 어떻게 좋은 사람일 수 있어?” “우리 희진이는 저년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였어. 그런데 죽은 친구의 어머니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때 임수정이 인형을 안고 현장에 나타났다. 임수정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입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우리 희진이 착하지... 무서워하지 마...” 현장의 모든 사람은 다시 한번 분노에 휩싸였다. 손청아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가 다시 새빨갛게 달아오르기를 반복했다. 곧이어 내게 달려와 양손으로 나를 세차게 흔들며,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똑똑히 봐! 이게 다 네가 범인을 감싸준 대가야!” “너는 부모도 없었잖아. 나랑 희진이는 네가 7살 때부터 외롭게 지내는 걸 불쌍히 여겨 늘 잘해줬어. 그런데 네가 우리한테 한 짓이 이거야?” 그렇게 말하며 손청아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을 휘둘러 내 뺨을 때렸다. “아직도 동정심을 얻으려고 해?” “희진이를 죽게 만든 건 너야. 이런 기억들로 내 마음이 약해질 거라 생각해?” 손청아의 가슴은 격하게 오르내렸고, 눈물이 예고 없이 뚝뚝 떨어졌다. 그 눈동자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망과 갈등이 뒤엉켜 있었다. “희진이가 죽었어!” “그런데 희진이를 죽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아? 바로 너야!” 손청아는 분노에 차 나를 흔들었고, 눈빛의 증오는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듯했다. 그해 강희진의 죽음은 손청아에게 모든 것을 휩쓸어버린 해일과 같았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손청아의 마음에는 끝없이 축축한 상처만 남아 있었다. 갑자기 손청아는 몸을 바로 세우고, 눈가의 눈물을 거칠게 닦아냈다. 순간, 손청아의 슬픔과 어두운 표정은 뼛속까지 시린 냉기로 뒤바뀌었다. “잘 들어. 범인을 찾아내기 전까지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내가 범인을 찾아내면, 너도 그 짐승 같은 놈과 함께 지옥으로 보내버릴 거야!” 손청아는 얼굴을 굳히고 기술자에게 기억 추출 범위를 넓히라고 지시했다. 더 이상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볼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기술자는 재빨리 다가와 콘솔을 조작했다. 기기의 빨간 바늘이 갑자기 치솟았고, 헬멧 속의 가는 바늘이 순간 더 깊이 내 뇌를 파고들었다. “아!” 나는 가슴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거센 전류가 내 뇌를 강타했고, 눈앞에는 새하얀 섬광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온몸이 미친 듯이 경련했고, 손발을 있는 힘껏 움직였지만 쇠사슬이 단단히 묶어놓은 몸은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린 피가 뺨을 타고 내려와, 차가운 철제 의자 위로 뚝뚝 떨어졌다. 대형 스크린의 영상이 정신없이 깜빡였다. 어느 순간에는 교실이 나타났고, 또 어느 순간에는 시냇가가 나타났으며, 다음 순간에는 산속 풍경이 펼쳐졌다. 모두 나와 손청아, 그리고 강희진이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강희진에게 일이 벌어진 그날 밤의 장면만은 나오지 않았다. 군중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생방송 댓글창도 순식간에 도배되었다. [뭐야? 왜 친구가 강간당한 그날 밤의 기억이 안 나와?] [분명히 범인을 봤다고 했잖아?] 손청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기술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범인이 나타난 기억을 찾지 못하는 거지?” 기술자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말을 더듬었다. 제4화 “정유나가 시스템과 대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기억 추출을 거부하고 있어요!” “뭐라고? 추출을 거부한다고?” 손청아는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음침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손청아는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아직까지 발악하겠다는 거야?” “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모든 걸 무릅쓰고 목숨까지 걸어가며 감싸는 거야? 그 사람은 고작 강간범일 뿐이야!” 10년 전에도 손청아는 나에게 똑같이 소리쳤다. 그날 밤, 강희진이 남긴 유서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나는 순식간에 모든 사람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모두가 나에게 범인이 누군지 다그쳤다. 손청아는 처음에는 내가 범인을 감쌌을 리 없다고 믿었지만, 흔들리고 의심하기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누렁이를 데리고 동굴에 숨은 사실은 오직 손청아만 알고 있었다. 누렁이가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던 순간, 나는 손청아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손청아는 몽둥이를 들어 내 머리를 세차게 내리쳤다. 순식간에 피가 흘러내려 시야가 흐려졌다. 손청아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어. 우리가 너를 친구로 생각했는데, 넌 우릴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거야?” “고작 강간범 하나 때문에 가장 소중한 친구들까지 버리는 거야?” 그날 밤,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거의 맞아 죽을 뻔했다. 손청아의 어머니는 이성을 잃은 손청아를 데리고 떠났고, 이틀 뒤 가족 모두 외지로 이사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손청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갑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손청아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날카롭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 추출 범위를 계속 넓혀!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마!” 기술자가 망설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정유나의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본인도 극도로 저항하고 있어서 기억 추출 범위를 더 넓히면...” “견디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손청아는 코웃음을 쳤다. 그 말에는 서늘한 조롱만이 가득했다. “견디지 못한다고?”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건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야!” “정유나의 생사 따위,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저런 인간은 죽는 게 차라리 나아.” 그 말이 떨어지자 기술자는 벌벌 떨면서도 기계의 수치를 올렸다. 기계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갑자기 커졌고, 헬멧 속의 바늘이 내 뇌를 세차게 찔렀다. “아!” 내 처절한 비명이 광장 전체를 찢어놓았다. 코와 귀, 눈가에서 동시에 피가 흘러내렸다. 가슴은 마치 뜨거운 불길에 타는 듯했고, 온몸이 의자 위에서 미친 듯이 경련했다. 기술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할까요?” “이제 곧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손청아는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며, 표정은 어둡고 알 수 없었다. “계속해.” 손청아는 입술을 살짝 열며, 온기가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기 소리가 울부짖었고, 대형 스크린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내 의식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 비명과 울부짖음이 허공에 메아리쳤고, 보기에도 참혹했다. 손청아는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 거의 미친 듯이 소리쳤다. “도대체 누구야!” “누구이길래 네가 목숨까지 걸고 그렇게 감싸는 거야!” 손청아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내 어깨에 엎드려 눈물을 쏟았다. “우리가 네 친구였잖아...” 손청아의 몸은 쉬지 않고 떨렸고,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내 손에 떨어졌다. 그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온몸을 움찔했다. 가슴 한구석이 갑자기 쥐어짜듯 아파왔다. 내 친구가 울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손청아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한순간 방심한 틈을 타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기억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군중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손청아가 놀라서 고개를 돌렸고, 대형 스크린 속 익숙한 얼굴을 본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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